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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니콜라스 카

by 흰둥이언니 2020. 11. 23.

옛날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다 양피지나 진흙판에 적어 보관했고, 한 권 한 권 손으로 직접 옮겨적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발명되었어요. 힘겹게 손으로 적어야 했던 책들이 이제는 척척 찍어져 쏟아집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책은 굉장히 희소해서, 몇권 없는 걸 누군가 낭독하고 사람들은 들었데요. 그러다가 책이 개인소장도 가능해지면서, 묵독 즉 소리내지 않고 각자 조용히 읽는 행태가 생겨났죠. 전에는 제한적으로 정보를 '들어야' 했던 사람들은, 쏟아지는 책들을 통해 스스로 수많은 지식과 정보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된거에요. 홀로 조용히 생각하는 것, 읽는 행위는 사람의 뇌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뇌의 가소성은 오늘날 연구를 통해 분명히 밝혀졌죠. 뇌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합니다. 이건 희소식이기도 아니기도 한데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면 희소식이지만, 반대도 가능하기 때문이죠. 책을 고요히 읽고 사색하는 것은 문화와 지식 발전에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현재 또다른 변화의 물결을 지나가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인터넷입니다. 책에서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이 사람들의 뇌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 지 이야기합니다. 인터넷을 넘어 스마트폰, 인공지능까지 발전되면서 사람들은 더 많은 일에 더 빠르게 생각을 빼앗기며 일상생활에서도 효율성과 편리함에 가속도를 내고 있어요. 온라인 페이지에는 우리를 자극하고 호소하는 다양한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저 역시 인터넷에서 글을 볼 때 후루룩 훑습니다. 제가 원하는 정보만 얼른 얻고 싶거든요. 유튜브를 볼때도 1.5배속으로 보거나, 원하지 않는 부분은 빠르게 점프해서 원하는 부분만 시청합니다. 더 빠르고 더 다양하게 정보를 캐치해 내는 것이 습관화 되고 있어요. 저는 심지어 때로 영화 한편을 보는 것도 지루합니다. 유튜브에서 리뷰로 재밌는 부분만 편집해놓은 영상을 보는 게 더 좋을 때도 있어요.

언젠가부터 깊이 생각하는 것은 희소해졌을 뿐 아니라, 불가능해지는 환경에 접어 들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겉핥기식 정보의 수집만 하게 합니다. 피상적으로 학습하는 습관속에서 문제 해결력이나 몰입을 통한 삶의 만족을 느끼는 것은 어려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책의 말미에서 '우리는 사회적 심리적 상황에 대해 시간을 가지고 깊이 생각함을 통해 타인의 심리를 경험하고 공감하게 된다'고 말해요. 만약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린다면 이는 우리 감정의 깊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야기는 꽤나 섬뜩했습니다. 

제록스의 연구원은 "수많은 종류의 일을 동시에 곡예하듯 해나가기를 갈망"한 데 반해 회의적인 입장의 과학자는 자신의 업무를 "홀로 고독하게 몰입하는 가운데 행하는 활동"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컴퓨터를 어떻게 사용할 지 선택함에 있어 우리는 책의 윤리가 우리에게 알려 주었던 홀로 고독하게 몰입하는 행위를 거부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곡예'에 내맡겼다.

온라인 세상에 들어갈 때 우리는 겉핥기식 읽기, 허둥지둥하고 산만한 생각 그리고 피상적인 학습을 종용하는 환경 속으로 입장하는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피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것처럼 인터넷을 서핑하는 동안에도 깊은 사고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는 인터넷이라는 기술이 권장하고 또 가져다주는 사고의 종류는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뇌의 가소성에 대해 아는 상황에서 우리의 정신적 회로를 가능한 한 가장 빠르고 철저하게 새로 조립하기 위한 도구를 개발하려 들 경우, 결국 인터넷처럼 기능하거나 혹은 그와 비슷해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 인터넷은 뇌의 회로와 기능에 강력하고 빠른 변화를 낳는 감각적이고 인지적인 자극, 즉 반복적이고 집중적이고 쌍방향적이고 중독적인 자극을 전달한다. 


미국 국립신경질환뇌졸중연구소 소장인 조던 그래프먼은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우리 뇌를 멀티태스킹에 맞도록 더욱 민첩하게 만들지만 멀티태스킹을 가능케 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깊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사실상 저해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프먼은 "멀티태스킹을 위해 최적화하는 것이 더 나은 기능, 즉 창의성, 독창성, 생산성을 가져올까? 대답은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멀티태스킹을 더 많이 할 수록 덜 숙고하게 되고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에 능한 사람들은 독창적인 사고로 도전하기보다는 관습적인 생각과 해결책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독서에 더 많은 효율성을 부여하려는 구글의 노력에 숨겨진 역설은 우선 이 같은 노력이 책의 기술이 독서에 가져다준 다른 종류의 효율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서를 해석하는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킴으로써 양피지나 종이에 써진 글은 우리가 더 깊이 있는 독자가 되도록, 집중을 기울이도록, 그리고 의미 해석에 우리 뇌의 힘을 기울이도록 했다.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글을 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문서를 재빨리 해독할 수 있겠지만 문서가 함축한 바에 대한 깊고 사적인 이해를 기대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또 다른 관련 정보의 조각으로 그리고 또 그다음, 또 그다음 조각을 향해 서둘러 달려든다. 이 '연관 콘텐츠'에 대한 노상 채굴은 의미 해석을 위한 느린 발굴을 대체하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면서 우리 사고 속에서 일어나는 풍부한 연관 짓기를 희생하는 위협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 웹이 만들어내는 연결들은 우리 것이 아니며, 우리가 아무리 많은 시간과 검색을 서핑에 쏟는다 해도 결코 웹의 연결이 우리 것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계에 기억을 아웃소싱할 때 우리는 지성이나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 역시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1892년 기억에 대한 강의를 끝맺으며 "연결은 진정한 사고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한마디 더 덧붙인다면 "연결은 진정 자아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학자들은 이 실험이 우리가 더욱 산만해질수록 인간의 가장 섬세하고 고유한 특성인 공감, 열정 등과 같은 감정의 경험은 더욱 줄어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 연구팀의 일원인 메리 헬렌 이모디노 양은 "특정 사고에서, 특히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심리적 상황에 대한 도덕적인 결정에서 우리는 적절한 시간과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이 너무 빨리 일어난다면 타인의 심리적인 감정을 완전하게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이 우리의 도덕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일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우리의 살아 있는 통로의 경로를 바꾸고 사색 능력을 감소시키고, 우리의 생각뿐 아니라 감정의 깊이도 바꿔놓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성급한 결론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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