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은 충분히 왜곡될 수 있다. 우리의 기억력 한계 때문만 아니라, 각자 주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왜곡될 수 있다. 독일 나치 군인들 앞에서 반라로 춤을 추는 집시의 영상에 만약 흥겨운 배경음악을 깔아준다면, 집시가 흥에 겨워 춤을 춘다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군인들에 둘러싸여 춤을 추는 집시가 자의로 흥에 겨워 춤을 췄다기 보다 강제적으로 춤 추게됬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한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중요하다. 기억을 바탕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어났던 전쟁에 대해서 후대들이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기억한다는 건 성찰한다는 걸 말한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 국민들에 대한 반감은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우리는 집합적 유죄의 논리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집합적 유죄의 예로 나치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대인 집단을 대량 학살한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유대인인 한나 아렌트는 독일인을 향한 일괄적 비난에 대해 그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대를 일삼은 사람과 같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현재 후대들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아니다. 당사자가 아닌 이에게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 행동을(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책임은 분명히 물을 수 있다. 그것은 후대의 책임이다. 그리고 바르게 기억하고 성찰하는 것이 후대가 할 일인 것이다. 과거를 잊은 채 당당하게 사는 게 아니라,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하며 사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집합적 유죄의 논리적 함정에 빠져 전후 세대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곤란하다는데 학생들은 대부분 동의한다. 그래도 무언가 석연치 않다. 전후 세대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해서 이들에게 과거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고 면죄부를 부여하기에는 어딘가 찜찜하기 때문이다. 죄를 묻기도 면죄부를 주기도 어려운 이 딜레마는 기억 전쟁의 한 축을 구성한다. 해결의 실마리는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과 그 과거를 기억할 책임을 구분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실존적으로 전후 세대는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 그러나 그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지금 여기의 문제이니, 전적으로 전후 세대의 책임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기억은 전후 세대가 과거에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저장된 기억을 원래 송두리째 빼내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지배적인 사회적 문화적 코드 체계를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해야 되는 현재 진행형의 작업이다. 과거사를 끄집어내 성찰하고, 또 그 성찰의 기억을 가지고 끊임없이 재고해야 할 책임은 전후세대에게 있는 것이다. - 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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