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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함

[책 추천] 쾌락독서 / 문유석

by 흰둥이언니 2020. 5. 7.

왜 책을 읽으시나요?

저는 새로운 걸 배우고 싶어서 읽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는 배우고 나발이고 없었어요. 그때는 이야기란 이야기는 모조리 찾아서 읽었어요. 너무 재밌어서 읽었습니다. 집에 몇 개 없는 동화책을 닳도록 읽는 게 안됬는지, 엄마는 교회 친구 집으로 종종 저를 데려가셨어요. 거기는 동화전집이 있었어요. 몇권씩 빌려다 읽는게 그렇게 송구하고 감사했어요. 그 때 읽은 이야기들은 여전히 마음에 장면장면 남아있어요. 비가 내리는 정원에 꽃이 잘려나갈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장면은 냄새와 빗소리까지 남아있는 듯 생생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땐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 사서를 지원했어요. 책을 대여해주고 정리하는 일을 한 대가로, 쉴때는 주구장창 책을 뽑아다가 읽었습니다. 너무 행복했어요. 책은 피난처같았죠. 현실에서 나를 꺼내놓고는 전혀 모르는 세계로 데려다 주니까요. 중고등학교 때는 교과서가 나오면 문학책을 받아다가 앉은자리에서 소설, 시 같은 곳만 다 찾아 읽은 기억이 나요.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고 얼마나 마음이 저릿했는지, 그때 시끄러운 교실, 햇살, 내가 느낀 감격 모두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학생때 제가 꽂힌건 판타지 소설이었어요. 퇴마록이 너무 재밌어서 쉬는 시간에도 열심히 읽었는데, 부모님은 양서를 읽어야 한다고 걱정어린 말씀을 하곤 하셨어요.

언젠가부터 좋은 책을, '잘'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어요. 그런 강박은 책을 평가하게 하고, 저에게 독서를 일처럼 task처럼 만들어버렸죠. 물론 좋은 양서를 읽는 게 좋은 건 알겠어요. 그런데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 책들을 필독서라고, 양서라고 억지로 읽는 건 과연 무엇이 마음에 남을지는 의심스럽네요. 그리고 재밌어서 이것저것 읽다보면 결국은 양서가 마음에 닿는 날도 온다고 믿습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책은 즐거운 놀이이고, 즐겁게 놀다보면 의미도 지적성장도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어걸리는 부산물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어떤 책이든 자기가 즐기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그야말로 쾌락독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책 읽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잖아요. 이런 건 맞고 저런 건 틀렸다고 속단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한 독서법 중 재밌어서 했던 독서가 행복했을 뿐더러 의외로 남는 것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남는 게 없었더라도, 어린 시절 저는 책을 통해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고,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하고, 느끼고 경험했던 것 같아요. 어차피 끝없는 여행인 인생에서 책을 통해 더 멀리 많이 경험할 수 있었으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행복했어요. 쾌락독서라는 저자의 이야기들이 많이 와닿았고, 재치있는 문장들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결국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고 세상 모든 것에는 배울 점이 있다. ‘성공’ ‘입시’ ‘지적으로 보이기’ 등등 온갖 실용적 목적을 내세우며 ‘엄선한 양서’ 읽기를 강요하는 건 ‘읽기’ 자체에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자꾸만 책을 신비화하며 공포 마케팅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은데, 독서란 원래 즐거운 놀이다. 세상에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책 따위는 없다. 그거 안 읽는다고 큰일나지 않는다. 그거 읽는다고 안 될 게 되지도 않는다. <쾌락독서> 문유석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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